현재 사용 중인 기술의 원천을 더듬어 올라가면 의외의 물건을 만나게 된다. 애플 맥을 예로 들면 운영체제의 원천은 의외로 애플 내부가 아니라 과거 애플에서 추방당했던 스티브 잡스가 외부에서 선보였던 운영체제 넥스트스텝(NeXTSTEP)가 맞닿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1984년 1월 매킨토시를 선보였다. 당시에는 대학이나 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매킨토시 할인 판매를 했다. 잡스는 영업 활동 선두에 서있었던 건 물론. 그는 스탠포드대학 오찬에 참석해 198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생화학자 폴 버그(Paul Berg)와 만나 유전자 재조합 실험을 할 수 있는 컴퓨터, 워크스테이션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얻는다.

하지만 1984년 크리스마스 시즌 애플은 매킨토시 수요 예측에 실패, 재고를 안으면서 첫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혼란의 원인으로 지목된 잡스는 1985년 사임한다. 그렇지만 사실 잡스는 사임 전부터 폴 버그로부터 얻은 아이디어를 위한 회사 설립을 생각 중이었고 사임 후 소유하고 있던 애플 주식 1주를 빼곤 모두 팔아 회사 설립에 충당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업이 바로 넥스트(NeXT)다. 처음으로 워크스테이션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운영체제도 직접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만들어진 게 바로 넥스트스텝.

넥스트스텝과 컴퓨터인 넥스트는 당시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가격만 해도 1988년 나온 첫 넥스트 컴퓨터는 6,500달러, 1990년 나온 넥스트큐브는 1만 달러에 달했다. 당시 유럽 입자물리학 연구소 CERN에 근무하고 있던 팀 버너스 리는 넥스트큐브를 이용해 세계 첫 웹 서버인 httpd, 세계 첫 웹브라우저 HTML 편집기인 월드와이드웹(WorldWideWeb)을 개발했다.





물론 비용이나 기능적 문제 등으로 넥스트의 하드웨어 사업은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이에 따라 1993년 청산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넥스트스텝은 높은 평가를 받는 운영체제였던 만큼 넥스트는 넥스트스텝에서 커널 부분을 뺀 오픈스텝(Openstep)을 개발한다. 또 1996년 3월 세계 첫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로 웹오브젝트(WebObjects)가 탄생하는 등 소프트웨어 사업은 계속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92NNyd3m79I

이 대목에서 애플이 다시 나온다. 잡스가 빠진 이후 CEO였던 존 스컬리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PDA 단말인 뉴튼(Newton) 개발을 추진한다. 뉴튼은 여러모로 선진적이었고 후일 등장할 휴대 단말의 예고와도 같았지만 사업으로는 실패했다. 또 매킨토시 라이선스를 팔아 매킨토시 호환 기종을 제조하게 하려는 사업도 벌였지만 라이벌 격인 PC 점유율을 빼앗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매킨토시 점유율이 위협받는 사태가 벌어진다.

1980∼1990년대 애플은 다양한 회사와 합병 협상을 진행하지만 결정이 되지 않았다. 애플 재건을 목표로 CEO에 오른 길 아멜리오(Gil Amelio)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움직임이 나온다. 아멜리오는 매킨토시 OS를 쇄신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내부 개발에 난항을 겪으면서 결국 외부에서 조달하기로 결정한다. 여기에 후보로 나타난 게 바로 잡스가 이끄는 넥스트의 넥스트스텝과 오픈스텝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hhFQ-3w5tE

후보군은 막판에는 오픈스텝과 존 스컬리가 추진했던 뉴튼에 반대해 애플에서 퇴사한 전직 애플 엔지니어 장루이 가세의 비오에스(BeOS)로 좁혀졌다. 장루이 가세는 비오에스의 프레젠테이션을 가볍게 끝냈지만 결과는 프레젠테이션의 대가 스티브 잡스의 승리. 사전에 세심한 준비를 한 오픈스텝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997년 1월 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에선 오픈스텝을 손에 들고 애플로 돌아온 잡스가 20분 동안 연설을 한다. 당시 잡스는 후일 iOS 앱 개발자가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시스템인 코코아의 시작 격인 기술을 선보인다. 이는 1997년 처음 나온 게 아니라 1988년 넥스트가 만든 것이다.





물론 이보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79년 잡스는 제록스의 팔로알토연구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컴퓨텅 네트워킹이라는 3가지 기술을 탑재한 컴퓨터 알토(Alto)에 주목한다. 잡스는 GUI에 눈을 빼앗겼다. 다른 2가지는 이해할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넥스트스텝은 객체 지향을 전면 도입한 건 분명하다. 이를 통해 지금 쓰이는 맥OS와 iOS용 응용 프로그램 개발의 길을 닦은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0zgj2p7Ww4

개인용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며 알토를 만들어낸 앨런 케이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걸 발명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988년 시점 이미 미래를 만들어낸 넥스트를 만든 잡스 역시 미래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lswcap@techho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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