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나 디자이너 혹은 관련 직종 종사자가 다른 업종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한 사업장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해도 정규직이나 계약직, 반(半)프리랜서와 프리랜서, 하청까지 다양한 계약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고용 방식이 여러 형태로 이뤄지는 것이야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IT 분야만큼 한 부서나 프로젝트에 서로 다른 계약서를 작성한 사람이 모여서 일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렇게 서로 이해관계가 다를 경우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법률에는 어떤 게 있을까.

◇ 개발자가 민법·노동법 구분 알아야 할 이유=사람이 사는 사회와의 관계가 넓고 복잡해지면서 이를 규정하는 법률도 내용이나 숫자 모두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성립되고 운영된 이래 가장 오래되고 기초가 되는 법률은 헌법과 형법, 민법이다. 이런 일반 원칙을 정한 법률을 기본법이라고 한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 법칙이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 정치 조직 구성과 정치 작용 원칙을 정하고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거나 형성하는 최고 규범이다.

형법은 범죄와 형벌을 규정한 법이다. 어떤 행위가 범죄이고 이에 대한 법적 효과로 어떤 형벌이 부과되는지를 규정한다. 또 민법은 사인(私人)과 사법인(私法人) 등 사적 법률주체 사이의 법률 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리와 의무를 규율하는 사법(私法)의 일반법이다. 여기에서 사인이란 공인의 반대 개념이다. 공적인 일을 하는 개인이나 기관이 아닌 모든 주체, 다시 말해서 정부나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을 뺀 거의 모든 개인이나 회사, 조직을 말한다.

이런 기본법은 말 그대로 기본 법률이기 때문에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다. 예를 들어서 민법 제655조 고용계약 조항을 살펴보면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하여 노무를 제공할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개별 계약은 이 원칙에 따라서 내용을 해석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특수한 조건이나 분야를 위해 상세하면서 구체적인 규범이 필요하게 됐다. 이런 배경으로 태어난 게 특별법이다.

소위 노동법으로 불리는 법률은 위에서 언급한 민법의 특별법이다. 다시 말해 법적 효력은 모든 지역과 사람, 사항에 관한 것인데 이들에 대해 보통 적용되는 법이 일반법, 보통법이라면 일반법보다 좁은 범위에 적용되는 법이 특별법이다. 특별법은 항상 일반법에 우선해 적용된다. 결국 노동법은 법률주체 사이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민법 가운데 근로계약관계라는 특수 관계에 한해 규정하는 특별이라는 얘기다.

민법과 노동법 구분이 필요한 이유는 개발자나 디자이너의 경우 근로자가 대부분이지만 때론 자영업자나 사업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라면 당연히 특별법인 노동법의 규제와 보호를 받게 된다. 노동법이 정하고 있지 않은 부분은 민법의 원칙에 따른다. 근로자가 아닌 경우라면 계약 관계상 대등한 주체로 민법 규범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된다. 이때 민법 규정은 의무조항인 근로기준법과 달리 임의규정이다. 이 규정과 다른 내용을 당사자간 약정으로 하게 되면 이 약정이 우선 적용된다.

◇ 민법·노동법 보호와 규제 속에 일한다=노동법은 어찌 보면 자유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거스르는 법일지 모른다. 시장경제 체제에선 첫째 개인 소유권은 절대적이다. 둘째 당사자간 자유의지에 따라 계약을 한다. 셋째 과실은 일으킨 사람이 책임을 진다. 여기까지 근대 시민법 3원칙이 기본이다. 따라서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법률은 자칫 비정상적인 것으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휴업 중 지급하는 수당이나 해마다 올라가는 최저임금, 사업주 잘못이 없는데도 지급하는 산재 보상 등 노동법이 규제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마치 초원에 있는 맹수로부터 약한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울타리를 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화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용자와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힘을 가진 쪽에서 일방적인 계약을 강요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불평등한 상황이 발생해온 것. 근로 관계에 시민법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근로자는 상대적으로 약한 입장에서 근로계약을 체결, 열악한 근로 환경과 임금이 일반화됐던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근로 관계에 개입, 일정 수준 이상 근로 조건을 보장하는 노동법이 탄생한 것이다.

딱딱한 얘기만 꺼내들었다. 이런 주제를 뽑아본 이유는 개발자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거나 구인업체로부터 연락을 받은 시점부터 퇴직하거나 프로젝트 완료 후 철수할 때까지 알든 모르든 민법이나 노동법 보호와 규제 속에서 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계약서나 규정을 확실히 알고 생활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권리와 의무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박용호 칼럼니스트  cpla.baa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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