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은 벤처기업, 같은 말이지만 요즘 말하는 스타트업의 황금기였다. 돈이 남아돌았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계속되면서 투자가 이어졌다. IT 시장은 그야말로 활황 그 자체였다. 필자가 근무하던 당시 IT 잡지 업계도 너나 할 것 없이 인터넷 포털과 쇼핑몰 등에 수십억씩 ‘꽂아 넣으면서’ 대박 신화를 꿈꿨다. 좋은 시절이었다.

물론 과도한 투자는 곧 거품이 됐고 2001∼2002년으로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했지만 공과를 공이 더 많았던(그것도 압도적으로) 시절이다. 정책적 측면을 따져보면 더 그렇다.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기고의 표현을 빌자면 “IT에 10조 쏟은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30조 쏟은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승자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관련기사 : IT에 10조 쏟은 DJ와 4대강에 30조 쏟은 MB, 승자는?).

출처 : 오마이뉴스 www.ohmynews.com

지난 8월 18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에선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김 전 대통령을 표현하는 말에는 늘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IT업계에선 ‘정보기술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로 평한다.

그는 1998년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이미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닦아나가겠다”는 말로 IT코리아에 대한 비전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이를 위해 취임사를 통해 “초등학교부터 컴퓨터를 가르치고 대학입시에서도 컴퓨터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점과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한편 중소기업은 집중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 손정의도 놀란 초고속인터넷 정책=지난 2011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한 일본 TV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대통령 취임 직전 빌 게이츠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이 지금 망하기 직전인데 무슨 해결책이 있겠냐”고 물었고 손 회장은 3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도 브로드밴드(초고속인터넷),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라고 조언했다는 것. 손 회장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이 브로드밴드로 세계 제일이 되겠다고 한다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에 김 전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고 대통령령으로 진짜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그런 결정 덕에) 진짜 한국이 세계 제일이 됐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 초기 국내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는 1998년 기준 1만 4,000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5년 후 퇴임 직전인 2002년 11월에는 1,040만 명을 넘어섰다. 700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2003년 열린 김대중 정부 IT정책 세미나에서 최영훈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는 “CDMA와 초고속 인터넷 기술이 일본 등 선진국으로부터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하는 등 정보 인프라 보급에 대한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조선일보 IT클럽).

◇ 벤처기업, 한때 GDP 3% 차지하기도=국민의 정부는 벤처기업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으로 9,000억 원에 이르는 지원 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창업 벤처기업에게는 3억 원을 지원했다. 실험실이나 교수 창업이 가능하게 길을 열었고 창업 자본을 2,000만 원으로 낮추기도 했다. 그 밖에도 조세 감면과 스톡옵션제 등을 차례로 실시했다.

벤처기업 수는 비약적으로 늘었다. 1998년 기준으로 벤처기업 수는 2,000여 개에 불과했지만 이런 활성화 정책 덕에 2001년 6월 1만 개를 넘어서는 등 5배 이상 늘었다. 벤처기업이 국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 때 3%에 달하기도 했다(위키피디아).

국민의 정부는 IT와 벤처, 중소기업에 대한 꾸준한 정책적 지원을 계속 해갔다. 그 결과 국내 IT 산업은 1997년 76조 원 수준에서 2002년에는 189조 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국내 총생산(GDP)에서 IT가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8.6%에서 14.9%까지 높아졌다.

전자정부도 빼놓을 수 없다. 국민의 정부는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시작해 일반 국민에게 가장 밀접한 민원 업무를 안방에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런 이유로 김창곤 당시 정보통신부 차관은 “국민의 정부 시절 IT산업은 국정 우선순위에 올라 있어 초고속인터넷 확산, 전자정부 프로젝트 등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졌고 IT 강국의 초석도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마찬가지다. 김 전 대통령은 정권 출범 후 R&D 예산을 3%에서 5%까지 끌어올리는 등 지원책을 실시했다. 오늘의 과학자상, 과학자 명예의 전당, 과학기술인의 상 등 사기 진작책도 내놨다. 이런 이유로 IT 신문 전자신문은 지난 2009년 기사를 통해 “일부 보수 정치권은 (이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하면서 IT 성과까지 폄하하기도 하지만 세계가 IT코리아를 보는 시각은 감탄과 경외 그 자체였다”며 “우리 산업계도 신바람난 10년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관련기사 : "IT정책 챙기고 과기인 氣 살려라").

◇ 2013년 대한민국이 갈 ‘미래로 가는 길은’=이제 2013년이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IT 정책도 생태계 구축이라는 목표가 같더라도 정부 주도형이 아닌 규제를 없애고 가능성을 열어주는 쪽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기창 고려대학교 법학원대학원 교수는 블로터닷넷과의 대담에서 “인터넷 산업에서는 진흥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부분에서 규제를 없애주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진흥을 이끌어내는 길이다. 차라리 연구개발 정도로 역할을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관련기사 : [블로터포럼] 새 정부 IT 정책, 바라건대).

지난해 대선 당시 IT 정책 자체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당시 문재인 후보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있었다. 구체적인 실천과 실행은 어떤 비전을 실제 갖고 있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잣대다. 4주기를 맞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오르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물론 잊지 말아야 할 게 또 하나 있다. ‘브로드밴드’다. 실제 브로드밴드를 말하는 건 아니다. 정부가 개입해서 “한국의 닌텐도를 키우겠니” 마니 “한국의 마크 저커버그를 찾네” 마네 할 시간에 잘 놀 수 있는 환경, 인프라와 여건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순간 지나갈 찰나쇼나 ‘명텐도’라는 비아냥만 돌아올 수 있다.

이석원 기자  lswcap@techho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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