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쓰이는 주사기는 지난 1853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살던 의사 알렉산더 우드가 특허를 획득하면서 시작됐다. 초기 주사기 형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160년에 이르는 역사를 그대로 이어온 것이다.

주사기를 이용한 혜택 가운데 가장 큰 건 백신을 투여해서 예방 접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체내에 항체를 만들어 면역력을 높여 질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 기능을 약화시킨다. 당연히 백신 투여에는 대부분 주사기가 쓰인다.

하지만 주사기는 공포를 동반한다. 7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불주사의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1회용 주사기가 없던 당시에는 주사기와 주사바늘을 일일이 소독해야 했다. 그 탓에 주사기를 한 번 사용하면 불로 소독을 하고 다시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1회용 주사기를 사용하는 지금도 주사기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하다. 20% 정도가 주사 바늘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더구나 지금도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 국가에선 ‘불’도 없이 주사 바늘을 몇 번씩 사용한다. 이럴 경우에는 질병이 확산되는 2차 오염 위험이 높아진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 WHO에 따르면 무려 130만 명이 이런 2차 감염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 주사바늘 사라진 새로운 주사기=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제안되어 눈길을 끈다. 호주 퀸즐랜드대학 생물공학나노기술연구소에 근무 중인 마크 캔들(Mark Kendall)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노패치(Nanopatch)를 제시한 것.

나노패치는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작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진(위 이미지)으로 보면 알 수 있듯 은빛으로 빛나는 건 주사바늘이고 아래쪽에 보이는 금색이 나노패치다.

나노패치는 마치 가로세로 1cm 짜리 작은 반창고처럼 생겼다. 하지만 여기에는 피부에 접촉하는 면에 400여 개에 이르는 작은 돌출부가 있다. 작은 돌출부가 바늘인 것이다. 이 바늘 하나하나는 반도체 제조에 활용하는 기술로 성형한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제조기술을 이용하는 것이어서 저비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취할 수 있다.

나노패치는 바늘 부분에 백신을 발라뒀다가 이를 피부에 붙여 백신을 투여하게 된다. 나노패치는 전용 애플리케이터에 설치한 뒤 팔 부위에 대고 꽉 누르면 딸깍 소리를 내면서 피부에 붙일 수 있다. 통증은 전혀 없다고 한다.

◇ 냉장 보관 없어도 효과 그대로=나노패치는 통증 없이 백신을 투여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수송이 간편하다는 점,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뿐 아니라 효과도 좋다. 나노패치 바늘은 피부 표피를 뚫고 백신이 가장 효과적으로 먹힐 수 있는 안쪽까지 바늘을 넣는다. 오히려 지금 쓰이는 주사바늘은 이 부분을 관통해버리지만 나노패치는 늘 가장 효과적인 위치에 바늘을 투여한다는 얘기다. 이런 장점 덕에 일반 주사기는 백신을 6,000나노그램 투여해야 하지만 나노패치는 6.5나노그램만으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비용으로 따지면 기존에 10달러 들던 걸 10센트로 줄일 수 있다는 것.

또 기존 백신은 콜드체인을 통해 운송해야 기능 저하가 없었지만 나노패치는 냉장 상태가 아닌 일반 건조 상태로 운반하면 된다. 23℃ 상태로 보관한다면 어떤 기능 저하 없이 1년 이상 유지된다고 한다.



실제로 주사기와 주사바늘을 냉장 보관하는 건 개발도상국 입장에선 부담이 크다. 파푸아뉴기니 같은 곳에는 백신 보관용 냉장고가 800대 밖에 없다고 한다. 그나마 노후화된 게 많다. 나노패치는 온도나 비용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마크 캔들은 나노패치가 큰 바늘을 사용하지 않아 고통이 없고 냉장 보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패치 형태를 취한 백신을 만들려는 시도가 그동안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눈에 띄는 효과가 없었을 뿐이다. 나노패치는 이미 5년 가량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최신 기술의 힘을 활용해 실용화가 가능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크 캔들의 TED 연설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lswcap@techhol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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